인물

1990년대

신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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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리운 사람 신길수

 

신길수 열사는 1956년 12월 10일, 1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이 여위고 어머니마저 신길수 열사가 고등학교 3학년일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적부터 힘든 생활을 이어나갔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생긴 빚 문제도 대신 지원해준 친구의 어머니 덕에 고교생활을 마치고 대학에도 합격하였지만 지원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길을 걸었다.

 

용산역 부근 교회에서 만난 것을 인연으로 서혜경씨를 아내로 맞고 1980년 5월 31일 결혼한 신길수 열사는 원래 다니던 전엔지니어링을 그만두고 결혼 3개월만에 동아엔지니어링에 입사하였다. 입사하자마자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을 가 9년동안 가족들을 위해 땀흘리며 일한 열사는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사는 노조위원장과 공익노련 부위원장 직을 역임하여 핵심적인 자리에서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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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위원장 임기가 끝날 즈음이던 1998년 1월,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외환위기의 회오리는 동아엔지니어링의 노동자들과 신길수 열사에게도 어김없이 닥쳐들었다. 원래부터 부채문제로 인해 경영위기를 겪던 동아엔지니어링은 1998년 말부터 상여금 삭감과 임금체불까지 저지르다 급기야 1998년 5월 부도가 나고 말았다.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약속과 달리 퇴출되고 만 신길수 열사는 조합원들과 함께 고용 및 체불임금 투쟁에 참가하였다.

 

신길수 열사는 5월 25일에 집을 나간 후 5월 27일 새벽, 집 근처 야산에서 조합원들의 생존권 사수와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긴 채 43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투쟁을 통해 동아엔지니어링 조합원들은 동아건설을 상대로 체불임금을 결국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출처

http://www.hannae.org/?c=user&mcd=hne0001&me=bbs_detail&idx=8040&cur_page=1&sP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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