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990년대

최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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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가 최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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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아 열사는 1963년 11월 10일,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1981년 이화여자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열사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으며 1983년에는 학원자주화 추진위원회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에 깔려있던 사복 경찰들에 저항하는 투쟁을 주도했던 최명아 열사는 1985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인천의 태성전자와 인우전기, 한비실업 등에 입사해 현장 경험을 쌓았고 한양목재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해 파업을 주도하다 불법해고를 당하고 구속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출소 후인 1988년에는 인천 글로리아 가구에 입사해 노동조합 활동을 주도했다.

 

노조 교육부장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으나 노조 결성 두달만에 공장이 화재로 인해 조업이 불가능하게 되자 해고를 당했다. 이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에 들어간 최명아 열사는 복직투쟁을 전개했고 1990년부터는 교육부장과 조직부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12월부터 창립된지 한달도 안된 민주노총의 조직국 조직1부장으로 헌신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열사는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으로 시작한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를 준비했다.

 

민주노총에 들어가 활동하던 열사는 특히 IMF 사태 발생 이후 각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부당 노동행위를 해결하기 위해 부족한 인원으로 더욱 바쁘게 일했다.

1998년 2월 4일에는 부당노동행위 중지를 요구하며 노조 대표들과 국민회의 당사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피로가 극심하게 누적되었으며 몸싸움이 발생해 뇌출혈로 인한 시력장애를 호소하게 되었으나 바로 이틀 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 안건으로 대의원대회를 조직했으며 총파업 투쟁을 준비했다.

 

그러던 2월 11일날 오후, 증세가 악화되어 진료차 안과에 갔다 그곳에서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최명아 열사는 1998년 2월 24일, 고작 35세의 나이에 영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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