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미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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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희망을 노래하다.

 

 

“차별 없는 자유로운 멋진 세상 향해 달리자

함께 사는 이 세상 함께 걷는 이 길에”

(스탑 크랙다운 1집 중에서 가사말)

 

네팔의 한 청년은 88올림픽의 남산타워의 장면을 보고 한국을 동경하게 되었고, 1992년 한국 땅에 입국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식당과 봉제공장 등에서 일을 했고, 노래가 좋아 1999년 KBS ‘외국인 예능대회’에 출현해서는 대상과 문화부장관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정부의 대대적인 미등록 체류자의 단속으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오랫동안 한국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소위 3D업종에서 일했는데, 단속 추방이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절망에 빠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과 강제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농성투쟁이 시작되자, 미누 역시 자연스럽게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공회 대성당의 농성장에서 2003년 11월 15일에 미누와 함께 다국적 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이 결성되어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의 노래가 한국사회에 울려 퍼졌다. 미누는 목장갑을 끼고 ‘월급날’, ‘손무덤’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주노동자방송국(MWTV)의 대표가 되어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되었다. 이주노동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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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노동자 쓰러지지 않아

밟히고 또 밟혀도 다시 일어나

누가 뭐래도 우리는 노동자

작업복에도 아름다운 일꾼

피땀 흘리면서 당당하게 살아간

세상을 바꾸는 한국을 만드는 노동자"

스탑크랙다운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 가자!’ 노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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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정부는 그를 반정부불온분자로 낙인을 찍어 강산에와 함께 인권 휴먼콘서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 공연 준비 중 2009년 10월 23일에 표적단속을 하여 추방시켰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내 나이 21살. 식당부터 봉제공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옛이야기가 생각이 나는데요. 93년 여름날 주말에 군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공장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게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아이고 고사리 같은 손 좀 봐. 여기 근처에서 일해?”라고 물어 본 할아버지의 안쓰러운 눈빛이 생각나네요. 정말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지금은 그 고사리 같은 내 손은 기계 속에서,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매우 차가운 바람 속에서 닳고 닳아 거칠고 굳은살이 핀 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17년 4개월이란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으로 진열돼 있습니다.

2009년 10월 15일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미노드 목탄 올림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미누는 네팔에서도 “네팔 스스로 네팔을 돕자”라는 슬로건을 걸고 ‘수카와티’(축복받은 땅)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며 네팔 대지진 복구활동(학교 재건 사업 및 빈민 활동 등)을 펼쳤다. 한편, 이주의 악순환 고리를 끊자는 한국 내 사회적기업 공정무역 카페 ‘트립티’의 대의에 공감하여 네팔에서도 카페 ‘트립티’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취업 및 창업교육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2017년 ‘트립티’ 대표 최의팔 목사의 추천으로 한국 핸드메이드 국제박람회에 초청되어 한국에 올 수 있었지만 어이없게도 인천공항에서 출입국은 입국거부를 하여 그는 다시 네팔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늘에서만 한국을 바라보고, 끝내 한국 땅을 밟지는 못했다. 액자 속에 놓여 있는 빨간 목장갑을 쥐고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런 미누를 위로하기 위해 2018년에는 ‘스탑크랙다운’의 멤버인 ‘소모뚜, 송명훈, 소띠하’가 네팔 현지에서 공연을 하였고, 이때 미누는 공연의 감동에 “나 이제 죽어도 돼. 이제 한이 없어졌어.”라며 여운을 남긴다. 

 

그토록 한국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못했던 미누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2018년 9월 13일에 개최된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안녕, 미누’가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나서이다. 

 

그렇게 미누는 꿈에 그리던 한국을 다녀 간 후 불과 한 달 만에 2018년 10월 15일 심장마비로 하늘로 돌아갔다. 

 

이 땅에 처절하게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했던 미누 동지. 생존권과 노동권이 철저하게 탄압받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아픔과 차별을 끌어안았던 미누 동지. 이 땅에 배제와 억압으로 갇힌 사슬을 풀고자 미누 동지는 그토록 STOP! STOP!을 목 놓아 외쳐 왔다는 것을.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자유인을 꿈꾸던 그대를. 하지만 우리 한국정부는 이중으로 된 쇠창살에 그대를 가두어 버렸소.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소. 미누 동지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임을.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하는 그대의 마음을 쇠창살로 가둘 수는 없을. 오히려, 차별로 점철되어 있는 우리 사회가 쇠창살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소. 미누 동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 진정한 자유는 마음에 있는 차별의 쇠창살임을 알려 주려 함을 알게 되었소. 

미누 동지. 미안하오. 그대가 처음 바라본 저 남산타워의 화려한 조명이 있지만, 그 아래 놓인 거대한 차별을 우리 보지 못했소. 그 한복판에서 차별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미누 동지의 마음을 우리는 알지 못했소. 너그러이 용서하오. 이제 우리도 미누 동지가 그토록 원하던 STOP!을 외칠 것이오.     

 

STOP! CRACKDOWN! 

미누에게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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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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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루 2022-01-16 오후 17:06

미누나무가 미누씨 처럼 서있네요.
이주노동자 인권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미누씨에게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국사회는 한걸음 나아갔습니다만, 미누씨를 비롯해 노력한 이들에게는 아무런 인사를 하지 않고 있어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미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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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현 2022-01-16 오후 20:18

사진 속 '미누 식수일'이 2021년 7월 17일 제헌절인 듯 싶네요.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깃든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시민정신이 푸른 나무의 기상과 함께 차별없는 인류애로 공고히 다져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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