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안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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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조의 심장과 발이었던 안현호

 

안현호 열사는 1963년 전북 남원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8년 전북 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축산업을 가꾸며 농부로 살기를 원했으나 대한민국에선 자본 없이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포기했다. 이 탓에 안현호 열사는 축산이 아닌 기계공학 전공으로 대학교를 진학하였다. 기계를 다루며 자신만의 철학을 가꾼 안현호 열사는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지만, 기계를 잘못 다루는 기계적 사람이 문제다' 라는 인생관을 견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지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0년 서울시 암사수원지사업소 기계기능직으로 입직하였으나 다시 1994년 기계직 공채로 경기도에 입직했다. 안현호 열사는 경기도 과천시에서 산업과와 교통운영과 등지에서 훌륭한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부조리한 공무원 특유의 조직문화 현장에 저항하는 것에도 뜻을 두었던 안현호 열사는 1999년 과천시공무원직장협의회 창립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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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장 직을 역임하며 얻은 공무원단체의 위상을 바탕으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과천시지부까지 건설되었으나 안현호 열사의 활동은 과천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안현호 열사는 2002년 단 3명밖에 없던 인원으로 출발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청지부에 들어와 모든 정념을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2003년 행정자치부장관실 점거 농성으로 인해 해임당하고, 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두번째로 해임되었다.

 

10년을 넘게 해고자로서 인생의 후반기를 살게 되었지만 평소 학습한 판례와 법률지식을 활용하여 경찰과 사법권을 압도하고 공무원u신문 기자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4년 서울시청지부의 부름을 받은 안현호 열사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청지부에서 재정부장을 맡아 일했다. 안현호 열사의 노력을 통해 공무원들이 하나 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공무원 노조원 2천명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비록 안현호 열사는 2016년 3월 2일 출근길에 갑작스런 교통사로고 인해 영면하였으나 안현호 열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계속해서 열사의 뜻을 받들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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