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문동환

 

문동환.jpg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문동환 목사는 조선신학교를 졸업해 미국 하드포드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후 한국신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75년부터 갈릴리교회에서 목회를 맡던 문동환 목사는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삼일절 기념 미사에 참가해 여러 재야인사들과 함께 박정희 정권 퇴진 요구 선언문을 발표하였다가 국가 전복 선동이라는 구실로 구속되었다.

자신들의 권력에 눈엣가시가 되던 인사들을 단번에 검거한 박정희 정권은 문동환 목사를 포함해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문익환 등의 관련자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탄압을 가했다.

문동환 목사는 이후 출소한 뒤에도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1979년, YH무역 여공들이 저임금, 불법 해고, 부당 전직 및 전출, 감봉 등의 노동법 위반을 근거로 신민당 당사에서 김영삼 총재의 허락을 받고 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이를 무력진압하기로 결정했고, 문동환 목사 또한 YH무역 농성투쟁을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로 투옥되기에 이르렀다.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인해 여공이 사망하고, 신민당 내부의 배신 등으로 인해 김영삼 총재가 제명되어 부마민주항쟁이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해 박정희가 암살당하는 것을 모두 지켜본 문동환 목사는 1년 뒤인 1980년 미국으로 망명해 생활을 이어나갔다.

신학자이자 교육자,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하던 문동환 목사는 이후 귀국하여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1988년 평민당에 입당하여 수석부총재와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장을 맡았던 문동환 목사는 이후 은퇴해 미국에서 615남북공동선언실천민족회의 해외위원회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종교개혁가이자 생명문화 공동체를 실천하려던 종교인 운동가 문동환 목사는 2019년 3월 9일 영면하였다.

 

 

_VAM1904.jpg

 

_VAM1905.jpg

 

 

 

문동환.jpg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