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980년대

김봉일

 

애국지사 김봉일

 

 

_VAM1773.JPG

 

 

김봉일 열사는 일제에 저항한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3월 16일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김봉일 열사는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 중 1926년 여름 농민 계몽을 목표로 한 항일학생결사 건아단을 조직했다.

농촌사회의 계발을 통해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일념에 김봉일 열사는 건아단의 동교생들과 함께 농민들을 교육하는데 힘을 쏟았다.

김봉일 열사와 건아단은 수원군 안룡면과 고견리를 비롯한 여러 마을에 농민야학을 설립해 활동하는 등 계속해서 규모를 키워나갔다.

1928년 6월 무렵, 건아단은 당시 일본 도쿄에 있던 조선농우연맹에 가입하여 조선농우연맹의 목표인 조선인에 의한 조선 농촌 개발에 이바지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대해 일제는 조선농우연맹의 지방강연 활동을 중지시키고, 학생들을 무기정학 시키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진행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직 발각되지 않은 건아단 단원들은 단체 명칭을 계림농흥사로 바꾸어 활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단원 한명이 일제 경찰에 의해 검거된 것을 계기로 1928년 9월 김봉일 열사를 포함한 건아단 조직의 모든 단원들이 검거되었다.

이로 인해 김봉일 열사는 수원고등농림학교에서 강제퇴학을 당했으며, 18개월동안 미결수 신분으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조선 자주독립을 표방하는 활동과 민족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단군 연호를 사용한 것이 말썽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후 1930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김봉일 열사는 면소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한국의 현대사의 산 증인이던 김봉일 열사는 1983년 3월 5일 영면했다.

이후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http://w3devlabs.net/korea/archives/1074

 

 

 

_VAM1775.JPG

 

 

 

김봉일.jpg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