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980년대

김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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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은 1907년 출생의 문학인이자 사회비판가이다.

부인 김한림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전신인 구가협 창설을 주도했고, 딸 김윤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한 농민운동가이다.

1907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소운 열사는 부산 옥성보통학교를 중퇴 후 13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도쿄 가이세이 중학교에서 중퇴 후 일본인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 문하에서 시를 공부해 일본 시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김소운은 한국 문학을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일조하였다.

김소운은 1952년에 목근통신과 1955년에 삼오당잡필, 또한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작품을 발간했다.

그의 작품은 서간체 장편 수필로 작성되어 일본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일본 체류 중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소운이 귀국하게 된 것은 4.19 혁명이 일어난 한참 후인 1965년이었다.

향년 74세의 나이로 김소운은 운명하여 부인 김한림 열사와 함께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2002년 발표된 친일문학인 42명의 명단과 2005년 친일인명사전 예비명단에 김소운의 이름이 올려져 명예가 실추되었으나,친일 작품의 편수가 적었으며 일제의 강압에 의한 작성이었다는 점과 함께 평생을 일본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하였다는 공을 인정받아 1980년 은관 문화 훈장을 받은 점 등의 사유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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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찾아가는방법  달뫼고개 넘어 약 200m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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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다리가 보임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올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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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끝까지 올라 좌측에 묘역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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