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김종하
경동산업 민주노동열사 김종하
1961년에 태어난 김종하 열사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년만에 노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다른 기업들도 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인천의 경동산업은 그 정도가 심해 노동운동이 매우 거셌다.
1985년, 그런 경동산업에 입사한 김종하 열사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그리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맞이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하였다.
경동산업의 노동자들 또한 권리를 요구하였으나 회사 측에서는 노동법을 무시한 불법해고와 부서 이동 등의 탄압을 가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처사에 항의하며 파업투쟁에 나섰으나 회사 측은 경찰을 동원해 8명을 구속하고 500여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노동운동은 대대적으로 탄압받았으나 포기는 없었다.
1989년 5월, 민주노조 건설을 목표로 한 친목회인 '디딤돌'이 결성된다.
경동산업 측에서는 이를 가만 놔두지 않았고 디딤돌 집행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1989년 8월 말부터 징계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였지만 회사 측에서는 대화를 거부하고 매일 구사대 200여명을 동원해 해고자들과 해고자들의 가족들에게 집단 구타를 가했다.
9월 4일, 경동산업 측은 징계 철회 요구 농성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구속시키겠다 통보한 후 경찰과 200명의 구사대를 동원해 해고자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에 김종하 열사를 포함한 3명의 노동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담판을 짓겠다는 각오로 본관 3층의 이사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경동산업 측 간부들은 징계를 수용하지 않으면 구속시켜버리겠다는 대답을 내놓았고, 이에 김종하 열사는 노무이사를 붙잡아 함께 분신을 시도하였다.
불붙은 몸으로 노동조합원들에게 "경동의 동료들은 싸워 이깁니다, 노동자는 승리합니다" 라고 절규하던 김종하 열사는 11일 뒤인 9월 15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