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신향식
민족해방과 자주평화통일에 몸바친 혁명가 신향식
신향식 열사는 군사독재정권을 상대로 투쟁한 민주화 운동가이다.
신향식 열사는 1934년 전남 고흥 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였다. 1964년 노동청 산재보험과 서기로 근무하였고 1965년 동아출판사 제작부에 취업,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임금 투쟁을 벌였고, ‘학사주점’의 봉사부장과 총무부장, ‘60년대 학사회’의 상무간사를 역임하였다. 신향식 열사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인해 구속,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선포와 1975년 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인해 민족민주운동가들의 활동을 억압하자 신향식 열사는 이에 맞서 지하투쟁을 결심, 1976년 2월 이재문, 김병권 등의 동지들과 합심하여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해당 단체의 중앙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신향식 열사는 1979년 10월 검거되어 1981년 12월 사형을 선고받고 1982년 10월 8일 서울구치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약칭 남민전은 1976년 결성된 반유신 민주화와 민족해방을 목표로 결성된 비합법 지하 조직이다.
1976년 2월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등이 결성하였으며 1979년 10월 9일, 1979년 11월 3일 구자춘 내무장관의 수사결과 발표에 의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남민전을 주도한 이재문은 민족일보 기자로,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1974년 민청학련과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수배가 된 상황에서 남민전을 결성하였다.
1977년 1월 반합법 전술조직 ‘한국민주투쟁위원회’를 결성, 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과 기관지 ‘민중의 소리’를 8차례 배포하였고, ‘민주구국학생연맹’, ‘민주구국교원연맹’, ‘민주구국농민연맹’을 결성하였다.
‘혜성대’라는 이름의 별동대를 조직, 자금조달을 위한 강탈 사건을 벌이기도 하였다.
1979년 10월 4일 공안기관에 의해 이재문, 이문희, 차성환, 이수일, 김남주 등의 남민전 회원들이 체포되었으며 1979년 11월 총 84명의 조직원이 체포된다.
박정희 정권은 ‘북한공산집단의 대남 적화통일전략에 따라 국가 변란을 기도한 도시게릴라 조직’이라 표현하며 ‘사리사욕을 위해 재벌 회장집을 침입하여 절도했다’고 공표하는 등 부도덕성을 부각시켜 발표하였으며, 이들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하였다.
1981년 11월 22일 이재문이 감옥에서 사망, 1982년 10월 8일 신향식 사형 집행, 안재구, 임동규, 이해경, 박석률, 최석진 등의 인물은 무기징역 선고, 김남주, 이수일 등은 징역 15년의 형을 받았다.
관련자들은 1988년까지 모두 석방되었으며, 2006년 관련자 중 최석진, 박석률, 김남주 등 29명이 반유신 활동을 근거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다.
<관련자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3400
https://archives.kdemo.or.kr/photo-archives/view/00755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