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최웅
최웅 열사는 1964년 5월 1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83년,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 입학한 최웅 열사는 장구장단을 맞추는 동아리인 '탈' 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영등포에서 노동절 가두투쟁을 하다 붙잡혀 훈방조치로 풀려나는 등 학생운동에 열렬했던 최웅 열사는 1986년 말, 노동자들의 주도로 진보된 세상을 만들고자 병역을 거부하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인천으로 이동했다.
1987년에 경동산업에 입사한 최웅 열사는 풍물패 활동과 노동조합 민주화 직인 '디딤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열성적인 활동을 펼쳤다. 최웅 열사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였으나 노동운동을 한 것을 고깝게 보았던 회사 측의 탄압을 받아 1989년 봄에 해고되고 말았다. 그러나 회사는 열사를 해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민주노조 조직 디딤돌 자체를 와해시키려 시도해 악의적 징계를 자행하였다.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디딤돌 회원과 노동조합원들은 농성투쟁을 벌이며 두 명의 열사가 분신하기까지 했다. 이후 최웅 열사는 1990년 초까지 인천지역해고자협의회 실무자로 근무하며 복직투쟁을 전개했고, 1990년 초에는 인천민중교육연구소에 몸담았고 1992년에는 인천민중연합 상담실에서 근무했다.
병역징집 거부투쟁 또한 계속하였던 최웅 열사는 이후 결혼식을 올려 신혼여행을 떠났으나 1993년 10월 26일, 불의의 조난사고를 당하여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