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김진균
민중의 스승 김진균
김진균 열사는 1937년 경남 진주 출생의 민주운동에 투신한 교육인이다.
김진균 열사는 1961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해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와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김진균 열사는 진보적 학문운동과 민주적 교수운동의 대부라고 불린 것처럼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하였다.
1972년 10월, 박정희 유신정권이 선포되자 김진균 열사는 학술논문집에 이를 비판하였으나 논문을 통째로 도난당하는 사고를 겪었다.
1980년에는 ‘신군부 집권에 대한 지식인 134인 성명서’와 ‘서울대 교수 시국 선언문’에 참여해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하였고, 이 때문에 해직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김진균 열사는 굴하지 않았고 1982년 상도연구실을 설립하여 후배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였다.
1984년 교수로 복직된 이후 김진균 열사는 진보적 학자들과 함께 산업사회연구회를 창립하여 1대 회장과 2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김진균 열사는 대학신문에 칼럼을 기고하였으나 총장의 저지로 인해 게재되지 못해 1년 뒤 1주년 추모행사에서 이를 낭독했다.
1988년 김진균 열사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역임하고, 1993년에는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지식인 운동의 틀을 잡은 주요 단체들의 창립과 발전에도 깊이 이바지했다.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지식인연대 대표,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대표, 민주노총지도위원,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등의 여러 민중운동과 노동운동의 대부 역할을 하던 김진균 열사는 지병인 대장암 증세의 악화로 인해 2004년 2월 14일 향년 67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