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00년대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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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비정규직을 감싸안은 노동열사 김태환

 

김태환 열사는 1966년 출생의 노동운동가이다.

1966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김태환 열사는 1986년 경북전문대를 졸업해 1992년 수안보파크호텔에 입사하였다.

수안보파크호텔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해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김태환 열사는 이후 1999년 한국노총 충북지역본부 지부장으로 임명되어 지역적 연대투쟁에도 투신하였다.

김태환 열사는 2000년에는 충북지방 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2001년에는 전국관광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2002년에는 충주시정 개혁위원 및 녹색충주21 사회 환경요원 등 계속해서 노동운동의 일선에 나섰다.

2005년 당시 대한민국 사회는 계속해서 악화되기만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시달렸다.

노동법 날치기 사건 이후 생긴 기간제 노동자, 파견근로자, 외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등의 형태로 나타난 새로운 종류의 노동자들은 특히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그 중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은 레미콘 운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충청북도 청주는 지역 특성상 레미콘 운전업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의 수가 많았다.

이런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형태의 노동자인지, 어떤 종류의 노동법에 의해 보호받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바꿔보고자 김태환 열사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레미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3권 보장과 운송단가 인상 투쟁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교섭은 계속해서 결렬되었고 기업 측에서는 파업하는 레미콘 노동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위험한 중장비를 다뤄 숙련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업 측에서는 운전이 미숙한 인원마저 대체운전자로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김태환 열사는 충주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충주사조레미콘 회사 앞에서 특수고용직 노동권리 보장요구와 함께 대체운전자 투입에 항의하며 대체운전자 차량 앞에 서서 몸으로 막아섰다.

레미콘 차량을 그대로 운전하면 인명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레미콘 대체운전자는 레미콘 차량을 열사에게 그대로 밀어붙인 뒤 도망쳤다고 한다.

심지어 경찰은 국민인 노동자의 권리와 생명권을 보호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원들의 시위를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대체운전자 차량을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운전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손짓이 있던 직후 김태환 열사는 레미콘 차량 아래 빨려들어가 사망하고 말았다.

마흔이 채 되지도 않은 나이에 부인과 어린 딸을 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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