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김근태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은 민주화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출생한 김근태 선생은, 1965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하였다.
1971년 2월 군사독재에 저항한 서울대 학생 시위를 배후조종한 혐의(내란 음모)로 첫 번째 도피생활을 시작했고, 1974년 긴급조치 4호 위반 등으로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7년 넘게 끝이 보이지 않는 피신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83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여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였다. 민청련은 군부독재의 폭력적 본질을 폭로하고, 각종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최초의 독자적·공개적 사회운동 단체였다.
민청련 활동으로 인해 1985년 9월 연행되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현재 민주인권기념관) 5층 15호에서 고문 경찰들에게 8번의 전기고문, 2번의 물고문을 당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맞이한 이후, 김근태 선생은 배우자 인재근과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고, 1988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자유 재단에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었다.
1988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결성,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와 인권 옹호, 통일을 위해 노력하였다. 1990년 전민련 활동으로 다시 투옥되는 등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5년 6개월의 수감생활과 26차례의 체포, 7차례의 구류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입당하면서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부터 제15,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의장 등을 역임하며 민주화와 서민경제, 한반도 평화, 정치개혁에 힘썼고,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 등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지켰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양대학교와 우석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김근태 선생은 민주화운동 당시 당한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았으며, 2011년 12월 초 뇌 정맥혈전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공개한 후, 상태가 급격히 위독해져 2011년 12월 30일 영면에 들었다.
김근태 재단 김근태재단 – 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 (gtf.or.kr)
https://youtu.be/uwfqULcUI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