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김희상
민주열사 김희상
김희상 열사는 1954년 출생의 민주화운동가이다.
1954년 1월 18일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난 김희상 열사는 1973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인해 구속되기도 한 김희상 열사는 출소 후 새로 등장한 전두환 정권과의 싸움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김희상 열사는 자신이 다니던 직장도 사직한 후 1984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대대적으로 강경탄압을 받고 수 차례 실패를 겪어 사그라들었던 1980년대 운동권의 불꽃을 다시 살린 민청련에서 활동하던 김희상 열사는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결국 김희상 열사는 일상적으로 경찰서에 연행되는 등의 탄압을 받았고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주변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건강보다 민주화 운동을 우선시 한 김희상 열사는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 1년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1987년에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을 맡았다 건강 악화로 인해 강원도 홍천으로 귀천한 김희상 열사는 민족무예 기천문 범사를 맡고 홍천에서 지역운동을 펼쳤으나 결국 병환으로 인해 57세의 나이로 2011년 7월 5일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