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박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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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혁명가 박기래

 

박기래 열사는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민족통일 사회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박기래 열사는 1926년 전라북도 남원의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14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낮에는 철공소 견습공으로 일하다 밤에는 직공학교에서 공부한 박기래 열사는 1945년 광복이 찾아오자 조국으로 돌아왔다.

마침내 되찾은 한민족의 주권을 가슴에 품은 박기래 열사는 민족을 위해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도 잠시, 신탁통치 오보 사건으로 시작된 좌우 대립은 점점 극심해졌다. 기껏 조국을 한민족의 손에 돌려받았건만 이제는 정치적 대립 때문에 나라가 둘로 쪼개지게 생긴 것이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하며 1947년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1947년 7월, 좌우익 통합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 간의 화합은 더 이상 꿈꿀수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파죽지세로 남하한 북한군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의용군에 사람들을 대규모로 징집하기 시작했다. 이 때 박기래 열사 또한 의용군 측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기래 열사는 미군에 투항하게 되었고, 1953년 수용소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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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민족통일의 꿈은 전쟁이라는 참극으로 끝났으나, 박기래 열사는 한민족을 위한 사회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국혁신청년동지회를 결성하고, 동아일보 기자로도 활동하던 그는 4.19 혁명에 직접 참가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61년, 박기래 열사는 5.16 쿠데타로 인해 전국혁신청년동지회의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박기래 열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1968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민주수호동지회를 결성하고, 1972년에는 민주수호동지회 회장을 역임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인생도 간첩조작 사건인 통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인해 1974년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박기래 열사는 사형 판결을 언도받았고, 헌정 사상 최장기 사형수로 서울 구치소에서 9년이라는 세월을 보낸다. 사형수에게는 사형 집행일이 미리 통보되지 않는다. 박기래 열사는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살을 막기 위해 항상 손이 속박당하는 생활을 겪어야 했다. 1983년 박기래 열사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사형수 신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박기래 열사가 석방된 것은 복역 17년째인 1991년이었다.

박기래 열사는 원래 60년대에 자가용 자동차를 소유하고, 2층 양옥집에서 살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간첩으로 몰려 집안은 풍비박산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드디어 감옥의 고통에서 석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기래 열사는 가난과 생활고에 옥죄어지는 삶을 보내게 된다.

박기래 열사는 개조한 리어카로 겨우 먹고 살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노인들에게 마차를 직접 만들어주고 노인자활복지회를 결성하는 등 인품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박기래 열사는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 말고도 통일운동 또한 계속 이어나갔다.

2000년에 들어서 사면 복권된 박기래 열사는 안산통일학교를 창설한다.

2001년 8.15 민족통일대축전 평양대회에도 참가하고, 2005년 금강산에 방문하고, 2008년 개성공단에 나무를 심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2년 1월 13일, 박기래 열사는 항상 가슴에 품던 통일이라는 꿈과 함께 영면하게 되었다.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가한 때 박기래 열사가 말하기를, "이제 통일이 멀지 않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기래 열사가 살아 생전에 통일의 순간을 보지는 못했다. 

통일을 위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간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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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통일혁명당 사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8240427105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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