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박문숙
민주화의 어머니 박문숙
박문숙 열사는 1955년 1월 19일 경북 영주에서 부친 박우성과 모친 이필순의 차녀로 태어났다.
1974년 서울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충남 오가중학교와 삽교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던 박문숙 열사는 1981년 3월 서울대학교 출신 민주화운동가인 김병곤 열사와 결혼했다.
군사독재정권이 계속해서 남편 김병곤 열사의 활동을 탄압하는 바람에 박문숙 열사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 김병곤 열사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구형받았다 풀려나고, 민청련 부의장 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민민투 사건으로 구속당했고, 1987년에는 투쟁지도부 상황실장의 직책을 맡았다 구로구청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
이 탓에 감옥에 자주 면회를 가게 된 박문숙 열사는 자연스럽게 김병곤 열사를 통해 교도소 안에 있는 다른 학생운동가들을 도와 재판을 위해 증인을 교섭하고 다른 교도소의 민주화운동 수감자들과 협력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남편 대신 두 자녀를 혼자 보살펴야 했던 박문숙 열사는 어머니로서의 활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에 가입해 구속된 학생운동가들의 학부모들을 돕고, 박문숙 열사의 본업이던 한국여성농민연구소 활동까지 하는 등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러던 도중 박문숙 열사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교도소 생활을 하던 중 건강에 이상을 느낀 남편 김병곤 열사가 비협조적인 교도소 측과의 싸움 끝에 외래진료를 받게 되었으나 진행성 위암 3기를 판명받고, 결국 1990년 12월 6일 암으로 인해 영면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의 암 투병을 병문안 온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해주는 등의 미담을 남긴 박문숙 열사는 남편의 사후에도 여전히 삼면육비의 활동을 이어나가야 했던 치열한 삶이 계속되었다.
박문숙 열사는 두 딸의 어머니로서 자식들이 대학에 가는 것을 지켜보고, 휴가도 없이 혹독한 조건과 잘 지켜지지 않는 여성인권 속에서 계속해서 일하며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던 농촌 여성들을 위해 시작한 한국여성농민연구소 일과 함께 생활협동조합과 여러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경기도의회 제4대의원, 녹색환경연구소 이사, 한국여성농민연구소 부이사장, 한국농어촌공사 이사, 6월항쟁계승사업회 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처장 등등의 수많은 이력만으로도 얼마나 바쁜 삶을 살았을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인생을 살았던 박문숙 열사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퇴하지 않고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업무를 도맡았다.
민청학련정신계승사업회와 각종 환경운동 단체에서 행사 준비, 기획, 예산확보, 교육, 행사, 여러 실무 등등을 도맡았던 박문숙 열사는 결국 2014년 4월 2일 오후 6시 50분 향년 59세의 나이에 암으로 인해 고단했던 삶을 마감하고 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