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박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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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목사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의 길에 함께한 평생의 반려자 박용길

 

1919년 10월 24일 황해도 수안면 수안광산에서 태어난 박용길 여사는 서울 경성 공립여고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박용길 여사는 일본에서 신학대를 다니며 조선인 신학생 모임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1944년 결혼했다.

 

해방 이후 문익환 목사와 같이 한국으로 이주한 박용길 여사는 6.25 전쟁에 휘말려 피난을 갔다가 1955년부터 교회 여성운동과 더불어 평화적 민주운동을 전개했다. 박용길 여사는 장로회 여신도회 임원, 한빛교회 장로, 기독교 계열 여성 및 가정 전문지 '새가정' 운영위원 등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맡아 활약하기도 하였다. 박용길 여사는 이후에도 남편인 문익환 목사와 함께 4.19 혁명, 민청학련 사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6월 민주항쟁 등등 여러 크고 작은 사건에 참여하거나 구명운동을 벌였다.

 

1985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를 결성해 평화적 석방운동을 주도하고, 문익환 목사가 투옥되자 매일마다 손편지를 써서 보내는 등 여러 노력을 하였던 박용길 여사는 6월 민주항쟁 이후 남편 문익환 목사와 함께 통일운동에도 힘을 썼다. 박용길 여사는 김일성 주석의 1주기 조문을 위해 방북했으며, 1994년 문익환 목사의 서거를 겪고 통일맞이칠천만겨레모임을 설립해 한 달여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 이 탓에 판문점을 통해 박용길 여사는 귀환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가 4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박용길 여사는 2000년 초청되어 다시 방북해 평화와 통일의 메세지를 전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6.15 남북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통일연대, 민화협 등에서 활동하며 통일운동을 주도했다. 박용길 여사는 2005년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받기도 하였으며, 동일 년도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한평생을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헌신했던 여성 종교인 운동가인 박용길 여사는 2011년 9월 25일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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