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서선원
전기협의장
서선원 열사는 1959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0년 철도청에 입사한 서선원 열사는 1988년 기관사들의 7.26 비공인파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구속자 가족 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여러 결과를 낳았지만 7.26 투쟁은 실패로 여겨졌다.
서선원 열사가 속한 전국기관차협의회는 민주화노조 조직력의 강화를 통해 운전수당 인상, 근로기준법 준수, 8시간 노동제, 주휴일 보장, 승급 개선, 10등급 철폐와 해고자 복직 등의 요구를 내세우는 노동쟁의를 개시했다. 여러 노력 끝에 기관사를 중심으로 한 노조민주화 세력이 대중적 성장을 이루었고 서선원 열사는 1993년 청량리기관차지부장에 당선되었다. 사무처장에 이어 의장직까지 역임하게 된 그는 1994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와 연대하여 공동파업을 벌이다 구속되어 2년동안 복역하였다.
구속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첫 면회를 오셨던 서선원 열사의 어머니가 충격으로 당일날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투옥 기간 중 세상을 등지는 일이 발생하는 고통을 겪은 것이었다. 서선원 열사 본인 또한 출소한지 2년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고초를 겪었지만 고난한 10년간의 해고생활을 견뎌내며 2001년 민주노조를 쟁취해 2004년 꿈에도 그리던 기관사 복직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이미 서선원 열사의 건강은 너무 나빠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웠고, 결국 그는 복직 2개월만에 철도 현장에서 떠나야 했다. 철도가 민주노조로 바뀐 것만 해도 일생의 보람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퇴직한 서선원 열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아들을 잃고 그 충격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서선원 열사는 마음을 바꾸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생업과 건강회복을 위해 힘썼으나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아 1달만인 2013년 10월 19일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