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양갑세
노동열사 양갑세
1974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양갑세 열사는 당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화은행에 입행하였다. 입행 직후 사무금융연맹 동화은행 노조에 가입한 양갑세 열사는 조합원으로서 열렬한 활동을 보였다.
IMF 외환위기 시절 동화은행 회생과 생존권 사수를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전개했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김대중 정권에 의해 결국 동화은행은 퇴출되어 양갑세 열사는 생존의 벼랑에 놓이게 되었다. 양갑세 열사는 해고 이후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살다 1999년 정릉신협에 입사하여 다시 금융노동자의 삶을 살게되었다. 정릉신협에서 민주노조를 결성해 초대 사무국장과 3대 지부장을 역임하여 모범적인 활동을 보인 열사는 고용안정과 권리쟁취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2010년 양갑세 열사가 노조 지부장으로 당선되고 정릉신협 측의 지윤식 이사장이 저지른 각종 부정부패를 폭로하자 사측에서는 이에 보복하기 위해 노조 활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정릉신협 사측에서는 비상식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빈도의 보복적 기획감사와 세무조사와 함께 신규 노동조합 가입자에 대한 해고 협박을 이루고,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 해고하는 등의 일마저 자행하였다.
특히 지윤식 이사장은 노동탄압을 주도하였고, 세살 된 아이와 함께 태어난지 100일도 안된 아이를 둔 가장인 양갑세 열사에게 "집을 압류해 거리로 내쫓아 버리겠다", "검찰에 고소해버리겠다" 라는 등의 발언과 함께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 협박을 가하였다. 온갖 협박과 탄압에 시달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양갑세 열사는 결국 2010년 12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36세의 젊은 나이로 영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