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오재영
진보정당의 영원한 조직가 오재영
오재영 열사는 1968년 1월 11일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으나 사회운동에 뜻을 두었던 오재영 열사는 이과계열이 아닌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로 진학하였다.
대학교 1학년 시기,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 투쟁에 참여하였다가 구속되기도 했던 오재영 열사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특위위원장과 서총연 조사국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 세력의 조직을 담당하였다. 1992년 민중후보로 출마한 백기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에도 기꺼이 몸담았던 열사는 서울진보청년회 초대 회장과 2대 회장을 거쳐 진보민청 사무처장 직을 역임한 1996년 10월 3일 권신윤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이후에도 청년운동에 계속 몸담았던 오재영 열사는 19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 대통령 후보 선거본부에서 활동하며 진보정당 건설에 참여했다. 1998년 진보민청 사건으로 구속되어 홍제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오재영 열사는 이적단체 구성, 이적표현물 소지, 고무찬양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열사는 7년간 민주노동당 조직국장과 조직실장과 진보신당 비서실장을 맡으며 현장의 상태를 파악하고 조직력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던 인재였다. 백기완 대통령 후보 선거본부에서 처음 만나고 민주노동당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인연이 된 노회찬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맡아 여러 활약을 선보였던 오재영 열사는 2017년 3월 22일 심근경색으로 영면하였다.
오재영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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