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이소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1929년 12월 30일 경북 달성에서 1남 2녀의 막내로 출생한 노동운동가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의 모친이다.
1947년 대구 남산동에서 봉제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전상수선생과 결혼한 이소선 여사는 1948년 9월 28일 아들 전태일을 낳고 이후 태삼, 순옥, 순덕을 출산했다.
사업이 크게 실패한 바람에 생계가 급격히 어려워져 폭력적으로 변한 자신의 남편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였다. 온갖 고된 노동을 하며 번 돈마저 상당수 병원비로 충당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고 화재가 나서 이재민이 될 정도로 힘든 삶을 겪었다. 그러던 1970년 11월 13일, 이소선 여사는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는 일을 겪게 되었다. 바로 아들 전태일이 노동3권을 보장할 것을 절규하며 분신투쟁으로 항거한 것이었다.
급히 옮겨진 병원에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달라고 부탁하고 2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자신의 아들이 내건 뜻을 이어받은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를 위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1970년 11월 27일, 청계피복 노동조합을 결성해 열렬히 활동하고 1977년 7월, 1980년 10월, 1981년 2월에 세 차례나 민주화 및 노동운동으로 인해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공로와 상징성을 인정받은 이소선 여사는 1985년 민가협 공동의장을 맡고 1986년에는 유가협 초대 회장직을 역임하는 등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 명예회복법 제정을 위해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노동운동이 일어나는 곳에 어디든 참여했으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끊임없이 요구했던 노동운동의 대모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 3일 오전 11시 45분경 노환으로 인해 82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