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이승원
1962년 출생의 이승원 열사는 1987년 한국데이타통신 입사 이후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90년 동사 노동조합 조사통계부장을 맡고, 이후 데이콤노동조합 위원장 직과 공공연맹 사무처장,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노동쟁의 현장을 주도했다. 1996년 여당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 이후 전국에서 노동조합 총파업이 발생했을 때도 이승원 열사는 그곳에 있었다. 이승원 열사는 2000년, 국민 기업 데이콤이 LG에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해 80일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쟁의와 파업은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들의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이승원 열사는 2002년,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해고자로서의 삶은 많이 팍팍했으나 열사는 기죽지 않고 노동쟁의를 이어나갔으며 2003년 공공연맹위원장을 맡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였다. 6년동안 이어졌던 해고자로서의 삶은 정말 끈질긴 법정공방 끝에 이승원 열사의 승소로 끝이 났다.
2008년 복직하게 된 이승원 열사는 노동자역사 한내의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2015년에는 공공운수노조 지도위원을 맡는 등 노동운동의 역사를 만들어나갔다. 온갖 노동운동 사료와 수많은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가들의 수많은 투쟁기가 작성된 것은 이승원 열사의 공로이기도 하다. 노동 박물관을 만드는 노동자역사 한내의 성취는 이승원 열사의 노력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열사는 2017년 7월 24일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쓰러져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