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이창기
진보통일운동가 민족언론인 이창기
1968년 4월 4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이창기 열사는 1988년부터 고려대학교에 재학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학생운동 과정에서 민족과 민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한 이창기 열사는 민족의 자주화와 조국의 통일을 위해 앞장서 투쟁하였다. 투쟁의 현장에서는 양손에 꽃병을 들고, 농악대 공연 마당에서는 꽹과리를 치며 학우들을 투쟁에 참여시켰다.
홍치산이라는 필명으로 1993년과 1996년에 시집인 [바보 과대표]와 [10분사랑]을 출간하여 수많은 학생운동가들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끼쳤다. 1990년대 중반, 탈냉전 평화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한반도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겉돌고 있었다. 이에 이창기 열사는 잘나가는 일자리였던 대치동의 논술강사 자리를 그만두기까지 하며 진보운동에 투신하였다.
민족을 지키고 전쟁을 막기 위해 자주통일운동에 불을 붙일 필요성을 강조했던 이창기 열사는 이를 위해 <자주민보>를 창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였으나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구속되었다. 이후 2002년, 월간지 <우리> 를 창간하고 2005년에 <인터넷 자주민보>로 전환하는 등 활발한 언론활동과 함께 진보운동에 자금을 지원했다.
2012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번째로 구속을 당하고, 2015년에는 <자주민보>가 폐간당하는 탄압을 겪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자주신보>를 만들어 판문점 선언 발표 등의 사건과 통일에 대한 수많은 기사를 써왔다.
그러나 이창기 열사는 간암 진단을 받고 말았고, 2018년 11월 10일 투병하던 중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