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이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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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한 사람 이해삼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해삼 열사는 1982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후 기독학생회에 들어가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학내 시위를 열었다가 탄압을 받은 열사는 1985년, 1년간 수감되었다 출소한 뒤 구두공장에 취업하였다.

 

시장에 저급 중국산 신발이 넘치던 시절 고급 수제화는 백화점 시장에서 높은 값에 팔렸다. 그러나 열사는 중간 수수료를 비싸게 떼먹으며 정작 수제화 장인들에게 제대로 돈을 쥐어주지도 않는 착취를 경험했다. 이에 열사는 서울지역제화노조를 만들어 성수동에서 활동했으며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민주노총 결성 이후인 1995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자 "이제 노동자들의 진짜 정당이 생겼다"라며 환호하였다. 이해삼 열사는 비록 화려한 정치이력도 없고 내세울만한 후견인이 있는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열사의 열정적인 면모와 성실한 모습이 시민들에게 인정받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에 크나큰 일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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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삼 열사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고,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장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등으로 활동하며 비정규직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제화아카데미 원장을 맡아 수제화 장인들을 교육하는 것에 온갖 노력을 쏟았으며,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후원하는 것에도 힘을 썼다.

 

이해삼 열사는 자신의 옛 시절처럼 수제화 장인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성수 수제화 생산협동조합에서 이사직을 맡고, 새날을 여는 지역사회교육센터의 대표를 맡는 등 사명을 다하였으나 2013년 4월 21일, 심근경색으로 인해 운명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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