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허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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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 허병섭

 

허병섭 목사는 빈민을 위해 활동했던 목회자이다.

 

1941년 경남 김해 출생으로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허병섭 목사는 1974년 빈민선교단체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를 시작으로 빈민 구제사역에 발을 들였다. 민청학련 사건 구속자 가족들을 위하여 1974년 7월 18일 민청학련 사건 및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고 이는 민주화운동사에서 유명한 ‘목요기도회’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76년 서울 하월곡동 달동네에 ‘동월교회’를 세우고 국내 최초의 탁아소 ‘똘배의 집’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에 힘쓰던 허병섭 목사는 유신정권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1976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가 북한과 조총련의 지시로 공산화 시도를 하고 있다며 허병섭 열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20여 차례의 구금과 고문 등의 탄압을 가하였다. 또한 허병섭 목사는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쉬이 부를 수 있도록 대중가요의 가사를 바꾸어 노동가요로 만든 곡들을 모은 소책자 ‘노동과 노래’를 배포하였는데, 1982년 이를 중앙정보부에서 음반 관련 단체들을 이용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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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동운동이 노선대립에 빠지자 허병섭 목사는 노동운동에서 발길을 돌려 1989년 최초의 주민 자치 조직 ‘월곡동 마을 청년회’와 ‘월곡동 건축일꾼 두레’를 결성한다. 또한 1988년 8월 15일 허병섭 목사는 대한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에 목사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교회의 제도권으로부터 해방되고 사회의 기득권으로부터 해방되어 빈민들과 완전히 하나 되기 위함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1996년 허병섭 목사는 경상도 무주 안성면으로 귀농, 우렁이를 이용하는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였고 생태 이념을 구현하는 대안학교 ‘푸른꿈 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푸른꿈 고등학교’ 설립을 함께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 2001년 경상남도 함양군에 ‘녹색대학’을 설립, 대학 차원의 대안 교육의 장을 열고자 하였다.

 

2012년 3월 27일 3년간 투병해오던 허병섭 목사는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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