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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사람들

인물

2010년대 이후

허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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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941년~2012년
당시 나이 71세
경남 김해 출생
이력 1941년 (경상남도 김해)
한국신학대학과 동 대학원 졸업(최우수논문상 수상)
1970년대 권호경, 이규상, 이해학 목사, 제정구 선생 등과 청계천에서 빈민선교운동을 시작하였고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총무 역임
1974년~1976년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 총무
1976년 동월교회 설립, 탁아소, 공부방운동의 효시. 빈민, 노동자와 함께 하는 민중교회운동, 빈민운동, 민주화운동에 헌신
1981년 한국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 설립, 소장
1982년 똘배의 집 설립
1990년 목사직을 내려놓고 건설일용노동자들과 함께 월곡동 일꾼두레를 만들었고 후배 빈민운동가들과 생산협동공동체운동을 전개하여 자활, 사회적기업운동의 밑거름이 됨
1996년 나눔과 섬심, 공생의 가치를 실현할 목적으로 무주로 귀농, 생태 생명운동을 전개하며 대안학교인 푸른꿈고등학교 설립. 2005년 온 배움터(녹색대학) 설립
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 민주화운동과 생명, 교육운동을 온 몸으로 실천해 왔으며 자신의 전 재산인 무주의 땅과 집을 자연생태 보존을 위해 자연환경국민신탁에 기탁
2012년 3월 27일 3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향년 72세를 일기로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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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 허병섭

 

허병섭 목사는 빈민을 위해 활동했던 목회자이다.

 

1941년 경남 김해 출생으로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허병섭 목사는 1974년 빈민선교단체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를 시작으로 빈민 구제사역에 발을 들였다. 민청학련 사건 구속자 가족들을 위하여 1974년 7월 18일 민청학련 사건 및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고 이는 민주화운동사에서 유명한 ‘목요기도회’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76년 서울 하월곡동 달동네에 ‘동월교회’를 세우고 국내 최초의 탁아소 ‘똘배의 집’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에 힘쓰던 허병섭 목사는 유신정권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1976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가 북한과 조총련의 지시로 공산화 시도를 하고 있다며 허병섭 열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20여 차례의 구금과 고문 등의 탄압을 가하였다. 또한 허병섭 목사는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쉬이 부를 수 있도록 대중가요의 가사를 바꾸어 노동가요로 만든 곡들을 모은 소책자 ‘노동과 노래’를 배포하였는데, 1982년 이를 중앙정보부에서 음반 관련 단체들을 이용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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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동운동이 노선대립에 빠지자 허병섭 목사는 노동운동에서 발길을 돌려 1989년 최초의 주민 자치 조직 ‘월곡동 마을 청년회’와 ‘월곡동 건축일꾼 두레’를 결성한다. 또한 1988년 8월 15일 허병섭 목사는 대한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에 목사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교회의 제도권으로부터 해방되고 사회의 기득권으로부터 해방되어 빈민들과 완전히 하나 되기 위함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1996년 허병섭 목사는 경상도 무주 안성면으로 귀농, 우렁이를 이용하는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였고 생태 이념을 구현하는 대안학교 ‘푸른꿈 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푸른꿈 고등학교’ 설립을 함께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 2001년 경상남도 함양군에 ‘녹색대학’을 설립, 대학 차원의 대안 교육의 장을 열고자 하였다.

 

2012년 3월 27일 3년간 투병해오던 허병섭 목사는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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