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이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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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의 아내 이계영

 

 

193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이계영 여사는 1959년, 신향식 선생과 혼인을 맺었다. 

 

남편인 신향식 선생은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인해 구속 수감되었다. 여기에는 사건 관련인 158명이 검거되었으며, 다수의 문화인, 종교인, 학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중 73명이 송치되었고 주동자인 김종태는 1969년 7월 10일에 사형되었으며, 이문규 등 4명은 같은 해 9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위 사건은 남한정치사회의 보수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혁신정치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간의 냉전체제가 심화되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뤘던 신향식 선생은 1972년, 비전향 만기출소로 풀려났으나 계속해서 반유신 지하투쟁에 돌입했다. 신 선생은 1976년 결성된 반유신 민주화와 민족해방을 목표로 결성된 비합법 지하 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다. 그러나 1979년 10월 9일과 1979년 11월 3일, 구자춘 내무장관의 수사결과 발표에 의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안기관에 의해 이재문, 이문희, 차성환, 이수일, 김남주 등의 남민전 회원들이 체포되었으며 1979년 11월에는 총 84명의 조직원이 체포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북한공산집단의 대남 적화통일전략에 따라 국가 변란을 기도한 도시게릴라 조직’이라 표현하며 ‘사리사욕을 위해 재벌 회장집을 침입하여 절도했다’고 공표하는 등 부도덕성을 부각시켜 발표하였으며, 이들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하였다. 남민전 활동을 주도한 신 선생은 결국 1982년 10월 8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2남 1녀와 두 며느리를 유족으로 둔 이계영 여사는 지난 2012년 신향식 선생 30주기 추모식에서 “성실하고 훌륭한 분이셨다. 남편인데도 존경한다. 평생 존경해 왔다. 지금도 존경한다. 너무 눈물이 난다”고 남편에 대해 회고한 바 있다. 이계영 여사는 2016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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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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