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문송면
문송면 열사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1987년 12월,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상경했다.
야간고등학교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영등포 소재 협성계공에 입사한 열사는 하루에 11시간씩 압력계 커버 신나세척, 페인트칠, 온도계의 수은주입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수은이 새어 나와 작업장의 공기가 수은 증기로 온통 뿌옇고 바닥에도 액체가 된 수은이 널려 있는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형식적인 개선명령만 내려놓고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작업 중에도 불면증, 두통, 허리와 다리의 통증 등의 증세가 나타났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불과 2개월 만에 수은중독증상을 보여 휴직계를 제출하고 집으로 내려와 요양을 하였다.
전신발작으로 악화된 후 4군데의 병원을 전전하고서야 같은 해 3월 22일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은중독 진단을 받았으며, 6개월의 투병 끝에 같은 해 7월 사망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 진단에 따라 가족들은 4월 7일 노동부에 산재요양신청서를 냈으나 회사의 방해에 놀아난 노동부는 10일 만에 산재요양신청서를 반려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이 일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6월 말에야 요양승인이 나왔으나 산재지정병원으로 옮긴지 이틀 만에 동지는 운명했다. 당시 동지의 나이는 만 열다섯 살이었다.
장례식은 같은 해 7월 17일에 ‘산업재해 노동자장’으로, 영등포구 양평동 4가의 협성계공 앞에서 약 5백여 명이 참석하여 노제를 지낸 뒤에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가졌다.
그의 죽음은 원진레이온을 비롯한 전반적인 직업병 문제가 쟁점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 문송면군 수은 중독 사건에 대한 설명
1988년 영등포구 양평동의 온도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군은 16살의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온도계에 있는 수은주를 가는 관으로 끌어올리려고 당시에는 가는 유리관인 수은주를 빨대 삼아 입으로 수은을 들이마셨다고 한다. 수은을 입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다가 수은중독에 걸려 사망하였고 영원히 ‘군’이라는 호칭이 붙을 수밖에 없는 16살의 나이에 사망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