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박기서
1948년 12월 9일 전라북도 정읍출생
2025년 7월10일 운명(76세)
배우자 원미수
장녀 박안숙, 아들 박찬종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의 집을 찾아가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그를 자신이 수제로 제작한 둔기인 일명 정의봉으로 살해했다.
1심에서 5년형이였으나 항소심에서 3년형으로 감형되었고 1998년 대통령 특사로 출소했으며, 출소 이후 여러 시민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일자리, 집등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사건 전에 일하고 있던 소신여객에서는 박기서가 출소하자마자, 바로 복직시켜주었고 70-2번 노선으로 4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퇴사 후 운전경력을 인정받아 2002년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하여 2021년 6월 기준으로 부천에서 택시기사로 근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004년 각종 친일반민족성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김완섭을 구타하면서 불구속 입건된 적이 있다. 김완섭은 꿍꿍이가 있었는지 박기서에 처벌 불원서를 내어 풀어주었고 이때 구타당한 김완섭은 "박기서는 안두희 살해범 박기서가 아니라, 나 김완섭 구타범 박기서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나, 당연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박기서가 안두희를 격살할 때 사용한 도구다. 이 도구는 사건 이후 경찰이 증거물로 압수했다가 재판 후에 돌려주었다. 범행 도구는 형 선고 때 선고내용으로 함께 몰수하여 폐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물며 여간한 범죄도 아니고 살인에 사용한 둔기를 범인에게 돌려줬다는 점에서 판결을 내린 판사도 이 사건을 일반적인 살인과는 매우 다르게 취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의봉 옆에 쓰인 글자는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논어 현문편 13장에 나오는 구절로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어라."라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 갇혔을 때 쓴 글로도 유명하다
앞서 서술했다시피 이 사건 이후로 '정의봉'이라고 써놓은 몽둥이가 시위나 집회 때 흔히 사용되곤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서 정의봉을 들고 있는 어떤 할아버지가 다큐 3일에서 인터뷰한 장면이 꽤나 화제가 되었다.
박기서가 사용했던 정의봉은 위 사진처럼 '견리사의 견위수명'이라는 한자가 적힌 한지로 감싼 채 박기서의 집에 잘 보관되어 있다가, 2018년 10월 안두희 살해에 사용한 밧줄과 장난감 권총과 함께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역사의 한 자료로 보존되었다.
고인의 장례비용이 부족해서 <사단법인 청년백범>이라는 단체가 나섰는데 김구 선생의 증손자 김용만(국회의원)이 이 단체를 후원하면서 단체문자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윤종군 국회의원이 이것을 SNS로 알려 더불어민주당 당원들도 후원을 통한 부조를 하게 되었다. 장례 마지막 날인 12일 박찬대 당대표 후보 등 정치인들도 부천장례식장 빈소에 방문했다. 이후 모란공원 민족열사묘소에 안장되었는데 박기서가 의거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책 중 하나인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를 저술하고 안두희를 추적하며 김구 암살 배후를 추궁했던 권중희 선생의 옆 자리에서 영면하게 되었다
(출처-나무위키외)
2019년 연합뉴스TV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김구 70주기 연합뉴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wJ-Ri0zp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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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범' 안두희 격살... 버스기사 박기서를 기억합니다 –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80663?sid=102
정읍 출신 민주투사 박기서 – 전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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