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990년대

김흥겸

1967. 03. 23 출생

1997. 01. 21 운명(36세)

2024년 모란공원으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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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20) 연세대학교 신학과 입학

19835(23) 축제 기간에 종교극회의 거리극 [누가 예수를]에서 예수 역할을 맡음.

이 극을 계기로 [민중의 아버지]가 알려지기 시작함.

19864~8월 독산동 프레스공으로 일하다 해고됨.

1986~1991년 서울시 철거민 협의회(서철협) 연대사업부 차장, 서철협 사무국장 역임, 전빈련 연대사업국 차장. 노점상연합회 활동

1994~1995년 극단 현장 배우로 공연

1995(33) 민중가수 류금신 1집 음반 [희망] 앨범을 준비 중 위암 말기 진단

1997(36) 1212년 여의 투병 생활 끝에 운명

 

 

 

 

 

8,90년대 빈민운동의 최일선에서 철거민과 노점상 조직과 투쟁을 함께 했던 서울시 철거민 협의회를 조직하고 전국노점상연합회와 함께 전국빈민연합을 결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꾀죄죄한 옷을 입고 큰 키에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다녔던 동지는 연세대 신학과의 명물이었다. 거리극을 준비하며 예수로 변신해 십자가에 매달리기도 했고, 채플 시간엔 학살이 자행되는 광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나님, 당신부터 회개하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런 그가 88올림픽 이후 광란의 재개발에 따른 철거민들에게 달려간 것은 필연이자 운명이었다. 그리고 노점상은 물론 건설일용노동자의 조직화에 함께 하기도 했다. 그가 작사 작곡한 대표곡 민중의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그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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