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김종수
노동열사 김종수
1966년 3월 21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태어난 김종수 열사는 1979년 빈암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중퇴하게 된다.
대구의 제빵공장에서 일하다 서울로 상경해 동대문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김종수 열사는 1988년 서광구로 공장에 입사한다.
김종수 열사가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김종수 열사의 평전에 나와있는 문구대로, 생산원가 중에 제일 손쉽게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이 임금이었다.
반장과 조장들은 같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래 직급의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약간의 권력만으로 자기 아래의 노동자들에게 끊이지 않는 고함과 욕설을 가했다.
김종수 열사는 단순 이익단체로서의 노조가 아닌 인간다운 대우를 받기 위한 희망을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다음해 쟁의부장으로 임명된 김종수 열사는 동료들과 함께 노동운동 탄압분쇄, 임금인상, 노동조합 독자운영을 위해 파업투쟁을 시작했다.
5월 3일 구로지부 노동조합원들은 회사 측과 협상하여 파업기간동안 지불하지 않았던 임금을 지급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고, 노조간부 3명에 대한 징계처리를 최대한 가볍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회사 측에서 약속을 번복하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김종수 열사는 이에 격분하였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셋방살이 노동자의 서러움은 싫다", "동지들을 처벌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스스로 분신하였다.
김종수 열사는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지만 5월 4일 오후 11시 30분경,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