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최우혁
꺼지지 않는 민주의 불꽃 최우혁
최우혁 열사는 1966년 3월 4일 서울에서 아버지 최봉규와 어머니 강연임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4년 3월, 서울대 서양학과에 입학한 최우혁 열사는 이후 학생운동 동아리인 <경제법학연구회>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최우혁 열사가 3학년이 되던 해인 1986년 5월, 체육관 선거를 통해 군사반란 독재자 전두환이 독재를 연장하려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학생운동은 정말 뜨거웠으며 최우혁 열사 또한 이에 반대하는 5.3 인천 시위에 참여했고, 5월 20일에는 서울대학교 이동수 열사가 분신투쟁을 하자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에 맞서 싸우다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렇게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우혁 열사는 학생 운동을 넘어 노동운동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과외를 하며 수배자를 돕는 등의 활동을 하다 경찰에 또다시 체포되는 등 잦은 유치장 신세를 지는 바람에 이는 좌절되었다. 더군다나 자식이 학생운동에 빠져 부상과 구류를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열사의 부모님은 열사를 강제 입대시키기로 결정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최우혁 열사는 1987년 4월 23일, 군대에 입대했다. 그러나 최우혁 열사의 군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같은 해 9월 8일 오전 7시, 최우혁 열사가 21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었다.
군 헌병대의 수사 결과, 최우혁 열사가 부대 내 쓰레기 소각장에서 단순한 개인적 고민 때문에 분신자살을 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추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최우혁 열사는 기무사의 서울대생 동향파악 대상자에 포함되는 등 지속적인 감시와 탄압을 받고 있었다. 비록 기무사의 자료 비협조로 인해 최우혁 열사의 죽음은 완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못했으나, 운동권 출신 병사라는 이유로 보직이 변경되고 부대원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았으며 훈련소에서 구타를 당하는 등의 정황이 있었다는 것은 밝혀졌다.
열사의 부친 최봉규씨는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으며, 19년만에 최우혁 열사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며 결국 목표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