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석광수
민주택시 노동자 석광수
민주택시 노동자의 인생을 살았던 석광수 열사는 1960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1977년부터 저임금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일찍이 시작했다. 석광수 열사는 20살 때 인천으로 상경해 주차장에 취직하고 어머니와 함께 자취생활을 시작했으며 1982년 부평 한시택시인 강국택시에 입사했다.
취업을 못하고 굶고있던 자신의 친구를 위해 3년간 다니던 택시회사 노동자 자리를 대신 물려주고 퇴사할 정도로 인간 석광수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1986년 3월 공성교통에 입사하여 거의 만근을 찍을만큼 성실한 근무생활을 하였고,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매달 3만원씩 장애자 돕기 후원회비를 수녀원에 내기도 하였다.
석광수 열사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 1991년 4월 6일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렇게 평생 성실하고 근면하며 남들을 돕는 것을 꺼리지 않던 석광수 열사는 91년 3월 노조 대의원으로 피선되어 현 박용주 조합장을 도와 모든 조합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석광수 열사는 6월 14일, 비열하고 무책임한 임금협상에 항거하여 발생한 차량시위 당시, 경찰들의 폭력적인 차량 견인에 항의하여 선두에 서서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쟁의는 결국 지도부 및 조합원 동지 210여명이 연행되어 실패로 끝났고, 석광수 열사는 거대한 불의를 참지 못하고 밤새 북을 치며 노동가를 부르다가 몸에 불을 질렀고 결국 1991년 6월 24일 10시 28분경, 31세의 젊은 나이로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