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진철원
애국학생 진철원
진철원 열사는 1975년 1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나 대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동아리 민족사 연구회인 '한얼'에서 활동한 열사는 고질적인 사학비리와 무리스러운 학생 징계와 고발 등으로 폐단에 찌들어 있던 학교의 상황에 개탄하여 이를 개선하고자 활동하였다. 진철원 열사는 1995년 8월경 동아리 활동을 잠시 중단했으나 같은 해 12월 경원대학교 학내에서 분신투쟁으로 운명한 장현구 열사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다시 투쟁을 시작하였다.
장현구 열사는 분신 후 114일이 지났음에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학교 측에서는 사과와 책임감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배와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7천명 가량이나 되는 경원대학교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런 막대한 부조리에 분노하고 있었으며 진철원 열사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배들과 동기를 보고 괴로움을 느꼈다.
1996년 4월 6일, 열사는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그간 진행되어온 장현구 열사 투쟁에 대해 토의를 한 뒤 헤어지고,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였던 장현구 열사의 죽음과 함께 학교 측으로부터 탄압당하는 학우들을 생각했다. 진철원 열사는 '심장이 펄펄 끓어오를때, 양심이 꿈틀거릴 때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 옆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나서지 못하고 비겁자처럼 놀고 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투쟁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당일날 밤 9시 30분경, 진철원 열사는 총여학생회실에서 분신하여 20세의 젊은 나이로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