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정미
노동운동가 이정미
1966년 출생의 노동운동가 이정미는 1993년, 청구성심병원에 입사하여 이후 병원 내 노조활동을 시작하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생겨난 청구성심병원노조는 탄압이 심각했다. 병원 측에서 구사대를 동원하여 폭행과 폭언, 식칼테러와 오물투척에 협박과 사직 강요, 집단구타 등의 만행을 자행하여 조합원들이 정신질환에 의한 집단 정신산재를 인정받을 정도였다.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청구성심병원의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연대 덕에 살아있었으며 이 중심에는 이정미 열사가 있었다. 노조활동을 시작한 이래 암으로 운명하기까지 단 한번도 노조활동에서 뒤로 물러난 적이 없던 이정미 열사는 만삭의 몸으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과 노조 탄압에 저항하는 최전선에 있었다.
2001년, 이정미 열사는 위암 발병 진단을 받아 투병하는 와중에도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원들이 집단산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에 나서 결국 2004년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사측의 탄압으로 인한 노동자의 정신질환 발병을 산재로 인정받는 성과를 남겼다. 위를 절제한 후에도 열사는 도시락을 싸들고 파업장을 찾아가 콘크리트 바닥에서 밥을 먹고 새우잠을 자는 등의 헌신적인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2005년 10월경 위암이 전이되어 급격히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바람에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시작했고, 2006년 8월 19일 40세의 나이로 영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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