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조영관
노동자 시인 조영관
조영관 열사는 1957년 10월 26일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함평초등학교와 학다리 중학교, 그리고 성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서울시립대에 입학한 열사는 교내 사회과학 써클인 <청문회>에서 진보적 사회운동을 문학과 어떻게 결합할지 고찰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1984년, 대학교에서 졸업한 이후 열사는 사회과학 출판사였던 <일월서각>에서 근무하였으나 2년간의 진보문화 출판운동을 그만두고 험난한 노동운동 현장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노동운동이 제일 치열했던 지역이었던 구로지역과 인천지역의 노동현장에 투신한 열사는 구로공단 등지에서 학습모임을 하다 1986년 이후 본격적인 현장활동을 전개했다. 1987년에는 학습모임이 공안정국에 발각되는 바람에 폭행과 해고를 겪었으며, 1988년에는 인천 부평에 위치한 동미산업에 노동조합을 결성해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켰다가 구사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해고를 겪은 이후 1989년부터는 인천지역에 건설일용노조를 결성하는 데에 매진했으며 영면할때까지 인천과 수원 등지에서 용접공과 제관공 등 일용직 노동자이자 노동운동 시인 문학가로 살았다.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활동으로는 2000년에 <노나메기> 창간호를 통해 시를 발표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2002년에 <실천문학> 가을호에서 시 부분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 있다.
2004년부터는 인천과 경기 지역의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자 생활 공동체인 <햇살>을 창립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2006년 10월 조영관 열사는 경춘고속도로 교각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정신을 잃어 얼마 지나지 않아 간암 판정을 받았다.
오랜 기간의 투병생활을 지낸 끝에, 조영관 열사는 2007년 2월 20일 새벽에 영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