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00년대

허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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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민주 노동열사 허세욱

 

허세욱 열사는 한미FTA 반대를 위해 활동한 노동운동가이다.

 

1953년 5월 9일 경기도 안성 출생의 허세욱 열사는 중학교 시절 가출하여 서울에서 막걸리, 박카스, 꽃 등을 배달하는 일을 하였고 1991년 택시회사 ‘한독운수’에 입사한다. 이후 1994년 허세욱 열사는 봉천동에 거주하던 집이 강제철거를 당할 상황에 처했고 이에 저항하는 철거투쟁에 참여,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1995년 ‘관악주민연대’, 1998년 ‘참여연대’, 2000년 ‘민주노동당’ 등에 가입하여 노동운동을 위해 힘썼고 2003년 ‘한독운수’ 노조 대의원 겸 통일부장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2002년 6월 13일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허세욱 열사는 살인미군 처벌과 ‘주한미군지위협정’ 전면개정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살인미군의 무죄선고 이후 허세욱 열사는 매일같이 범국민촛불행사에 참여하였고 주변 지인들에게 나중에 자신의 퇴직금으로 두 여중생의 추모비를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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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허세욱 열사는 2004년 민족문제의 해결을 위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에 가입, 용산기지이전비용 한국부담 반대,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등 반미투쟁에 열정적으로 앞장섰다. 2006년 5월 4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과 평택 황새울 벌판 철조망 설치 반대 투쟁을 전개하던 도중 연행되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한미FTA 협정이 대두되자 허세욱 열사는 한미FTA 반대투쟁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양국의 협상은 타결 직전까지 이르렀다. 결국 2007년 4월 1일 허세욱 열사는 한미FTA의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에서 한미FTA 중단과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하였다.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화상 후유증 및 패혈증으로 2007년 4월 15일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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