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고광석
도시빈민운동의 큰 별 고광석
고광석 열사는 도시 빈민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194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고광석 열사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정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러나 서울에 와서도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려운 탓에 고광석 열사는 빈민촌에 살며 노점상 운영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환경정비에 나섰다.
하지만 실상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빈민촌을 철거하고 노점상 단속을 자행하는 것이었다.
안그래도 생계가 힘든데다 이마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한 고광석 열사는 빈민운동진영과 함께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기로 결정한다.
서초동 꽃마을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시작으로, 1987년에는 서울시철거민협의회를 결성했으며, 1년 뒤에는 해당 단체의 회장직을 맡게 된다.
1989년에는 전국빈민연합을 결성해 공동의장 자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고광석 열사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도시 빈민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길에도 거리낌 없이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한 일례로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공동의장이라는 핵심적인 자리에 역임한 것 등이 있다.
하지만 평생을 가난과 정의를 위해 싸웠던 고광석 열사는, 1994년 이후 자신의 질병과도 싸워야 했다.
오랜 기간동안 투병생활을 이어간 고광석 열사는 결국 2019년 4월 30일 영면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