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를 열망한 '분지'의 작가 남정현

1933년 12월 13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남정현 열사는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한 1958년에 소설인 경고구역을 집필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3년 뒤인 1961년, 남정현 열사는 중편소설인 '너는 뭐냐'를 집필하여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5년, 남정현 열사는 자신이 집필한 단편소설 '분지'에 의해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작가가 되었다.

분지, 즉 똥의 땅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해 정신착란으로 사망하고, 여동생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미군 상사의 아내를 성폭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남정현 열사의 소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화두가 되었다. 북한의 조선로동당에서 이 소설을 반미 문학이라며 기관지에 게재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남정현 열사는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고, 중앙정보부의 수사관들은 소설 분지가 남정현 열사가 직접 쓴 작품이 아니라 북한에서 미리 작성되어 남정현 열사에게 이를 배포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믿고 있었다.

남정현 열사는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의 사상적 불온함과 북한과의 관련성을 자백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혐의를 모두 부인해 결국 7월 7일 정식으로 구속되었다.

검찰은 반공법에 의거하여 남정현 열사를 빈민대중에게 계급의식을 조장하고 한미동맹을 이간질한다며 공격했다.

심지어 증인으로 북한에서 남한 측으로 전향한 인사들과 전직 남파 간첩을 세워 남정현 열사의 소설이 북괴의 선전과 동일하며 북한 최고의 공산주의 작가가 내놓을 작품이라는 증언을 내놓게 하기도 하였다.

남정현 열사 측에서는 작품 '분지'가 우화소설이므로 친미소설도 반미소설도 아니며, 작가 본인이 북한의 선전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당시 시대는 반공주의적 정서가 매우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한국 사회에 크나큰 논란을 불러왔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남정현 열사의 작품을 불법으로 단속할 근거는 전혀 없다고 보았고, 심지어 반미 감정이 북한과의 동조를 뜻한다면 반미정책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 대통령도 북괴와 동조하는 것이냐며 민주주의를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들지 말라는 주장을 사설에 게재하였다.

재판의 논란성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미국 타임지에서도 한국의 한 풍자적 우화 작품이 북한 정부에게서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있다고 보도했다.

창작의 자유와 국가의 검열을 화두로 한 항소 의견에도 불구하고 남정현 열사는 무죄가 아닌 선고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박정희 정권에게 있어 주시의 대상이 된 남정현 열사는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1호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5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등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가 이루어 진 후, 남정현 열사는 연작소설인 '허허선생 옷 벗을라'와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 마지막 단편소설인 '편지 한 통 - 미 제국주의 전상서' 등을 발표하고 2002년 제12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활동을 계속해서 전개했다.

민족적 자주정신을 열망했던 천부적인 이야기꾼 남정현 열사는 2020년 12월 21일 영면하였다.

남정현의 문학은 결코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일깨우는 처절한 목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에는 웃음이 있다는 것이 한 특징이다. 

그것이 말하자면 남정현의 삶의 여유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분명히 훗날 재평가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을 가장 정직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욱 "천부적 이야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