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박준경
철거민 민중열사 박준경
철거민 민중열사인 박준경 열사는 1981년 3월 12일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박준경 열사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의 한 집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을 내며 생활하고 있었다. 박준경 열사가 살고있던 마포구 아현동은 한때 2300여 가구가 살았을 만큼 북적대는 동네였지만 동시에 재개발 대상이 될 정도로 가난하고 낙후된 곳이기도 하였다. 본래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이 사람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는 법이라지만 박준경 열사와 어머니의 형편에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서울 집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힘든 삶이지만 그나마 싼 가격에 구한 집을 보금자리 삼아 살고있었던 박준경 열사에게 2016년 6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박준경 열사의 집과 그 주변이 관리처분 인가 후 명도소송이 진행된 것이었다. 이후 2018년 7월경 재개발 강제집행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졸지에 철거민 신세가 되어 여기에서마저 쫓겨난다면 정말 살 곳이 없었던 박준경 열사는 철거민 연대투쟁으로 강제집행을 막아냈다. 그러나 2018년 9월경, 2차 강제집행이 진행되어 집에서 내몰린 아들은 주변 빈집에 들어가 살고 어머니는 위원장 집에 머무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겨울인 12월부터 재개발 강제철거를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재개발에 동원된 용역들은 11월 30일날까지 30차례나 강제철거 시도를 반복하였다. 결국 박준경 열사는 마지막까지 버티다 집에서 끌려나와 길거리를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당일날 박준경 열사는 어머니를 만나 날씨가 추우니 찜질방에 가 있으라며 5만원을 받았으나, 박준경 열사에겐 집에서 쫓겨날때 급하게 챙겨온 물품이 담긴 가방 말고는 남은것이 없었다. 3일간 서울의 추운 길거리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던 박준경 열사는 결국 37세의 젊은 나이로 12월 2일 한강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법적으로는 야생동물을 위한 보금자리 구역마저 보장되거늘 사람이 살고 있던 아현동의 철거민들에게는 제대로 된 대책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강제철거에 대해 사과하고 제도의 개선을 약속하였으며 재건축 철거민 의무보상 방안 등을 담은 단독주택 재건축 세입자 대책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