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서경순
민주가족 서경순
서경순 열사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일원으로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였다.
서경순 열사는 1989년 10월 아들인 이창규의 구속을 계기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활동을 시작한다.
1992년 ‘남조선노동당간첩 사건’에 항의하기 위하여 39일간의 농성에 참여, 안기부 앞에서 투쟁하였다.
1992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94년에는 상임의장, 1995년 운영위원, 2010년 고문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서경순 열사는 2017년 3월 6일 병환으로 사망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약칭 민가협은 1985년 12월 12일 민주화 운동 관련 구속자 및 양심수를 후원하기 위해 결성된 사회운동단체이다.
민가협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구속자가족 협의회’에 연원을 두었으며 1976년 ‘양심범가족협의회’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유신정권 시절부터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던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 ‘재일교포간첩단 사건’ 등의 관련자 가족과 1985년 ‘미문화원 사건’, ‘민정당 연수원 점거농성 사건’에서 구속된 학생들의 가족들이 모여 민가협을 결성한다.
민가협은 기존의 구속 가족을 매개로 한 단체들과 달리 구속 가족의 석방에 주력하는 것이 아닌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주요 이념으로 삼았다.
민가협은 양심수의 실태를 조사, 이를 사회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양심수의 존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으켰다.
민중에게 민가협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의 활동이었다.
당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에 대해 여성단체연합과 연대,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삼베 두건을 쓰고 항의 시위를 벌였고, 1987년 7월 9일 이한열 군의 장례식 때에도 삼베 두건을 쓴 채 행렬을 선도했다.
이 삼베 두건은 후에 민가협의 상징물로 쓰이게 된다.
1995년 세계최장기수 김선명 석방 캠페인 등 국제사면위원회와 같은 세계적 인권단체와의 연대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92년 12월 여러 인권단체들과 힘을 합쳐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를 결성, 활동을 개시해 2000년 9월 3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한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1993년 9월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를 시작했으며, 인권콘서트, 인권만화전, 인권영화 제작,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공연 등의 여러 행사를 통하여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현재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과 같은 비민주적 법제도 개선 운동,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운동, 보안관찰법 폐지운동, 성적소수자 인권문제 사회의제화 등 사회 곳곳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출처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6244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5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