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윤주형
아름다운 청년노동자 윤주형
윤주형 열사는 1977년 출생, 1995년 검정고시로 졸업하여 1996년 협성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 이내 중퇴하였고 2003년부터 2006년 민주노동당 경기도당의 수원청년회에서 활동하였고 2007년 기아차의 화성 도장공장 기현업체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대학시절부터 노동자를 대우해주지 않는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윤주형 열사는 입사 직후부터 비정규직 철폐와 처우 개선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2007년 기아차 비정규직 선봉대 소대장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6월 노동자의 연월차 사용자유화와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사내하청 기현 작업거부 투쟁’을 벌였고 2008년에 기아차지부 47년차 대의원 및 민주노총 중앙 파견대의원을 역임한다.
2008년 11월 ‘강제 전환배치 저지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원들의 원직을 사수하였고 2008년 12월 ‘박리장 투쟁’으로 기현업체 내 성추행 등을 일삼던 비리관리자를 퇴출하였다.
윤주형 열사는 2009년 기아차지부 48년차 대의원을 역임, 2009년 5월 ‘기현업체 XM바디 일방투입 저지 및 신규인력채용 투쟁’, 2009년 8월 ‘기현업체 단협파괴 조합활동 탄압 관리자 퇴출투쟁’, 2009년 11월 ‘기현업체 전착후 처리장 일방적 공정변경에 대한 작업거부투쟁’, 2009년 12월 ‘노노갈등 분쇄, 정상적인 노사관계 쟁취를 위한 끝장단식 투쟁’ 등의 투쟁들을 앞장서 이끌었으며 투쟁 도중 한차례 부당한 면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았고 2010년 4월 20일, 윤주형 열사에게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한다.
그러나 윤주형 열사는 이에 맞서 ‘기아자동차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해고자 전원 복직과 사내 하청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외치며 투쟁하였고 2010년 10월 민사재판에서 사측의 부당한 처우를 인정하며 승소하였으나 끝내 복직되지 못하였다.
윤주형 열사는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2012년 ‘쌍용차 대한문 농성장 투쟁’ 등에 연대하여 싸우며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으나 2013년 1월 28일 복직되지 못하는 상황을 비관하며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