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김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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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서울지하철 운영사업소 신호원으로 입사했다.

노동자 대투쟁의 해인 1987년 서울지하철노조 설립에 참여했고 설비지부 초대 신호지회장으로 활동했다.
1989년 3월16일 지하철 최초로 전면파업을 전개하고 구속,해고됐다.

복직 후 1993년 4대 강진도 어용집행부를 조합원의 힘으로 퇴진시키고 서울지하철노조 제5대 위원장에 당선, 1994년 3월 16일 출범한 전지협 상임의장을 맡았다.

서울지하철노조와 부산지하철노조를 가맹노조로 하고 철도노조 소속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를 참관단체로 하는 조직이었다.
전지협 공동투쟁의 핵심 요구는 전기협(철도)의 변형근로제 철폐와 8시간 노동제 쟁취,서울지하철과 부산지하철의 3% 정부 임금가이드라인 철폐였다. 당시 정부가 임금 가이드라인을 강요하면서 공기업 노동자들의 공분이 치솟는 상황이었다.
역사적인 전지협 동맹파업은 궤도노동자들이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 정과 전기협 파괴기도에 맞서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으로 정면 돌파한 투쟁이었다. 당시 정권의 분리대응 전술에도 궤도노동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며 투쟁을 전개해 노동자계급의 연대성과 투쟁성을 명확히 보여준 투쟁이었다.
파업투쟁으로 전지협 소속 노동자 수십 명이 구속됐고, 수백 명이 직위해제를 당하거나 해고됐다.

동지는 전지협 상임의장으로 구속되고 또 다시 해고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동지는 출소한 뒤, 2000년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평소에 소탈한 성격이지만 노동자의 대의와 원칙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단호하고 엄격했던 동지였다.

공공연맹 위원장 당시 대의원대회 시작 후 30분이 지나자 더 기다리지 않고 산회를 선언해 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동지는 2010년 서울지하철노조 간부 중 유일하게 복직하지 못하고 정년퇴임을 맞이 하였고, 이후 광명에서 시민사회 단체들의 작은 사랑방을 운영해오던 중 2019년 암 발병 이후 치열하게 투병하시다 '2022년 11월 23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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