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10년대 이후

김준기

 

 

 

 

1962 농사단, NSD) 창단, 농민가 공동창작 및 전국 보급
1963-92 전국대학4-H연구회연합회 창립 (초대회장/지도위원)
1968-76 한국가톨릭농민회 창립 (1.2대부회장), 경기도연합 초대회장
1988- 사월혁명회 창립회원 (7. 8. 9기 공동의장)
1988 민중의 당 창당 (부총재, 공동대표)
1989-91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대변인) 월간 '함께하는 농민' 발행국가보안법위반 및 출판물위반 혐의 공안사건 구속, 2년 수감
1993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주한미군시설확장반대 우리땅되찾기
2005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국민연대,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2018- 민족자주평화통일 중앙회의 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2023년 8월 9일 췌장암 투병 중 성남시 자택에서 운명

 

동지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힘 없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이후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농민들이 스스로 주체로 서는 농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활동하다 1968년 김영자와 결혼을 하며, 함께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의 길을 가기로 의기투합한다. 1977년 ‘농사도 좋지만 사람농사를 함께 짓자’는 신구대학 이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원예과 교수로 부임하며 그의 터전은 공동체 생활의 현장이 되었다. 1987~1989년 민주화운동시기에 민족자주평화통일 대변인을 역임하고, 월간 <함께하는농민>을 발행한다. 이 때의 활동으로 인해 민자통 재건 및 출판물 발행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공안사건으로 부당하게 구속되어 2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교수직에서 해임된다. 출소 후 아내이자 동지였던 김영자가 갑작스런 위암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타계한다. 연이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통일운동과 지역운동에 더욱 열정적으로 활동한다.이후 민가협 유가협 활동 중에 만난 문승필 열사 어머니 오순례와 재혼을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의장과 범민련남측본부 부의장, 평화협정체결운동본부 고문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학술모임과 시위현장에 꾸준히 함께 했다. 2021년 교통사고를 당해 걸음이 온전치 않아도 활동을 멈추지 않던 동지는 2023년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투병 과정에서도 ‘내가 아파서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버지처럼 싸우다 죽을 거라 생각했다’며 마지막까지 농민 노동자 빈민이 모두 단결해 정치세력을 만드는 데 자신이 해야할 일을 생각하던 동지는 8월 9일(음력 6월 23일) 성남시 자택에서 타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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