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990년대

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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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일열사 박기상

 

 

1959년 경북 상주 출생의 박기상 열사는 1978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이념써클인 후진국경제연구회에 가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80년 봄, 박기상 열사는 일본어 서적인 '유물사관과 자본론의 세계'를 배포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유인물을 서클 후배들과 함께 살포하였다는 이유로 긴 수배 끝에 투옥되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박기상 열사는 그 역시도 교회에 입문하여 서울제일교회 대학생회에서 활동했다.

박기상 열사는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연구홍보부장,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 총무국장, 사무처장 등을 거쳐 한국 기독교계의 민주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간부 중 한사람으로 일했다.

박기상 열사는 1985년 총선을 앞둔 시기부터 정치분석글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시기를 거쳐 1년 뒤까지도 계속해서 국내외 정치를 분석하는 글을 직접 책임졌다 1년 6개월간 수배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90년, 박기상 열사는 노태우 정권 출범 이후 조성된 공안정국의 탄압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던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끈 단체 중 하나인 민족의 화해화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의 실무책임자를 맡았다.

또한 박기상 열사는 1991년 5월 공안통치분쇄투쟁부터 1992년 대통령 선거 시기까지 수많은 문건을 작성하며 기독교의 민주운동 등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의 학문적 토대를 제공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박기상 열사는 기독교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사무처장을 맡고 겨레사랑동포돕기범국민운동 실무책임자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간사를 맡는 등 통일운동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개혁국민연합 집행위원과 바른정치실현시민연대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청년네트워크 21의 사무차장을 맡는 등 1990년대 후반에 들어 정치활동에도 노력하던 박기상 열사는 1999년 9월 18일 41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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