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00년대

박혜숙

 

박혜숙.jpg

 

 

민주화 운동 열사 박혜숙

 

1954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박혜숙 열사는 이 땅의 민주와 정의, 민족 통일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았다. 박혜숙 열사의 한민족을 위한 투쟁은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을 입학한 후 시작되었다. 

 

1973년 교내 써클인 "파워"의 회장에 취임하고,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화여대 대표로 활동하는 등 박혜숙 열사는 이화여대 학생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 탓에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되어버렸고, 1974년 이화여대 3학년 재학 중 박혜숙 열사는 중앙정보부로부터 불법 강제납치 연행을 당해 온갖 공갈 협박 및 구타와 각종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강압적이고 조작적인 수사 끝에 찾아온 것은 4월 5일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와 4호 위반혐의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불법으로 수감된 것이었다.

 

 

 

[크기변환]관련 (2).jpg

 

 

 

애초에 민청학련 사건 자체가 박정희 정권이 독재에 반발하는 민주화운동가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억지 사건이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극심한 항의를 겪어 결국 박혜숙 열사를 포함해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된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출소 후 전에 이화여대 대표로 활동했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부회장을 역임하게 된 박혜숙 열사는 1978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생운동세력 출신이었던 최민화 열사와 결혼했다. 박혜숙 열사는 결혼 후 신촌에서 세민약국을 운영하며 민주청년협의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반독재 활동을 지원했다.

 

1985년, 박혜숙 열사는 남편 최민화가 김근태 의장과 함께 구속되고 정권에 의해 살인적 고문을 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자 재판과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운동을 펼쳤다. 이후 박혜숙 열사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건강사회를 위한 전국약사회 그리고 이화여대 민주동우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박혜숙 열사는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되었고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를 수여받았다.

 

그러나 박혜숙 열사는 민청학련 사건 당시 투옥과 고문 등으로 계속해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1987년 위암이 발병하는 등 병마와 싸우던 중, 2004년 9월 3일, 50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_VAM2044.jpg

 

[크기변환]최민화,박혜숙202404묘역도_최종.jpg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