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00년대

홍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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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결혼한 영원한 청년 홍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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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엽 열사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성엽 열사는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3년 연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1974년 4월, 홍성엽 열사는 중앙정보부와 유신 정권의 최대규모 용공 조작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1년 뒤, 2.15조치를 통해 석방된 홍성엽 열사는 유신체제 말기 반독재 저항운동의 핵심적인 청년단체인 민청협에서 활동하였다.

1979년 11월, 권력을 잡은 전두환이 대통령 간선을 악용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로 허수아비 대통령을 뽑으려 시도하였다.

이에 반발한 재야 민주인사들은 이를 저지하는 규탄대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든 집회가 금지되었을 뿐더러 공개적인 시위를 벌였을 시 군경과의 큰 충돌이 일어나 논란을 빚을게 분명하였다.

이에 계염령 상황에서 성인식, 결혼식, 장례, 제사만이 유일하게 허용된 것을 이용해 YWCA 회관에서 결혼식으로 위장한 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때 홍성엽 열사는 스스로 ‘가짜 신랑’을 맡았으며, 신부 역의 인물로는 그 해 타계한 윤형중 신부의 성씨와 민주정부에서 각각 정과 민을 따와 윤정민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냈다.

위장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으나, 이에 참여한 윤보선과 함석헌을 미행한 경찰들이 현장을 습격하여 140여명을 체포했다.

홍성엽 열사는 이때 가까스로 탈출하여 며칠간 경찰을 피해 도피하였으나 결국 체포되어 구속되고 만다.

국군보안사령부는 윤보선과 함석헌을 제외한 나머지 핵심 주도인물 14명에게 잔혹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 중에는 홍성엽 열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후 5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YWCA 사건으로 여론의 눈을 돌린 틈을 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하였고, 이후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집권하였다.

1981년 3월, 대통령 취임 특사로 홍성엽 열사는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YWCA 사건으로 구속된지 1년 3개월 만이었다.

석방 이후에도 그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는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민청련과 민통련 등의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88년부터는 동학에 심취하여 수련과 연구활동에 정진하던 중 1997년 백혈병이 발병하였고, 이후 2005년 10월 5일 타계하기까지 힘겨운 투병생활을 벌였다.

홍성엽 열사는 당시 민주화운동 인사들 사이에서 꽃미남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외모가 출중한 인물이었으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성엽 열사는 독신이 아니었다. 홍성엽 열사가 치룬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이 YWCA 회관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이었듯, 홍성엽 열사는 진정 민주주의와 결혼한 영원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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